
(출처:미스코리아 홈페이지)
한때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삼아 미스코리아와 슈퍼모델을 비교하는 일이 잦았다. 누가 고현정이 짱이라고 하면 다른 친구는 이소라(가수 말고)를 말하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하는 식이었다.
나는 어땠냐고? 어땠을 것 같나. 당연히 둘 다 좋았지. 어차피 미스코리아나 슈퍼모델을 내가 만날 일도 없고 이 양반들이 나를 만나줄 일도 없을텐데 따지면 뭐하냐는 심정이었다.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은가? "만나만 주시면 황송합니다, 여왕님들."
이렇게 슈퍼모델과 미스코리아에 대해서 별 생각 없이 그저 헤벌레~ 했음에도 이거 하나만은 자신한다. 적어도 전체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둘 중 하나가 다른 쪽에 비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는 것 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 안다. '지덕체를 갖춘,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인 미스코리아는 다른 미인들과는 뭔가 격이 다르다고 말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느때부턴가 이런 류의 주장과 생각, 말을 접하면 심하게 어이가 없다. 한동안 이럴 때가 없었는데 고맙게도 어제오늘 많은 사람들이 이번 주에 뽑인 미스코리아와 2007년 미스코리아를 두고 하는 말로 간만에 이런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일단 상황만 간략하게 정리를 하면, 선발된 진선미 셋 중 한명은 예전에 누드모델로 활동한 전력이 있어서 문제가 되고 있고 2007년 미스코리아 중 한명은 이전에 축구협회 홈페이지에 "모 축구선수의 애를 가졌는데 그 선수가 낙태를 종용한다"는 글을 올렸던 전력이 있어 역시 여러 말을 불러일으켰던 모양새인 듯하다.
사실 앞으로 이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큰 관심이 없다. 누구는 미스코리아란 타이틀을 자진해서 반납할지도 모르고 아니면 의지와는 상관없이 박탈당할지도 모른다.(9일 저녁 지금 이미 그렇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어이없는 건 많은 게시판, 뉴스 댓글에서 본 "낙태를 한 여자가 어찌 한국을 대표하는 미인이 될 수 있나" "누드모델 전력이 있는 여자가 감히..."라는 의견들이다. 다분히 미스코리아에 대한 어떤 특별한 전제가 느껴지지 않는가?
무엇보다 가장 먼저 거부감이 드는 건 '미스코리아'란 존재에 대한 과도한 권위 부여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1957년 한국일보사가 주최해 지금까지 매년 진행하는 미인대회다. 한국일보가 주최하면 이런저런 스폰서들이 행사에 필요한 자금도 지원하고 뽑힌 사람들은 그 회사 홍보도 해 주면서 진행되어 온, 본질적으로 '비즈니스'에 가까운 행사다. 상업성? 미의 상품화? 당연한 일이다. '코리아'란 이름이 붙어 뭔가 있을 것도 같지만 미스유니버스, 미스아메리카, 미스코리아 류의 대회는 그 많고많은 민간 단체가 자발적으로 진행하는, 인기만점 이벤트가 본질일 뿐이다.
아, 그렇다고 내가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가치를 몽창 무시하는 건 아니다. 40년 이상의 역사를 통해 어떤 것이 아름다움인지에 대한 나름의 가치를 가져왔을 것이고 그게 우리 사회의 가치기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임에 분명하다. 역대 미스코리아들의 활발한 활동 속에서 분명히 '국위 선양'이나 '한국 이미지 홍보'도 분명히 이뤄졌을게다.
그렇다고 해도 '미스코리아' 자체를 그 이상의 대단한 것인양 생각해서도 안된다. 비유를 하자면... 미스코리아 진은 서울대학교 수석입학 학생 정도 된다고 하면 될 것 같다. 서울대학교 수석입학 학생이 우리나라 고등학생 중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사람인가? 결코 아니다. 그해 수능성적과 내신, 서울대학교 논술고사 성적을 종합한 결과 선발된 '서울대학교 기준에 가장 잘 맞는 고3 학생'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가 국내 최대 IT기업이라고 해서 삼성전자 수석신입 합격자가 '우리나라 최고 IT인재'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다음으로 매우, 정말 많이 거슬리는 건 낙태한 여성, 누드사진을 찍은 여성을 뭔가 죄를 지은 걸로 보는 시각이다.
낙태 자체는 사실 찬반이 명백하게 갈리는 문제니 그게 죄라고 생각한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낙태 자체보다는 성관계의 유무, 다시말해 육체적 순결(순결은 무슨 개뿔..-_- 단어도 맘에 안든다)과 연계지으니 문제다.
자신을 책임질 수 있고, 책임져야 하는 성인의 성관계 경험 유무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 성관계 자체가 도덕적인 잣대로 작용하는 게 온당하다는 생각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성인의 마스터베이션과 성관계에 어떤 본질적인 차이가 있겠나?
누드도 마찬가지. 같은 취지니 더 쓰면 손만 아플 참이다.
하나 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걸 말하라면 낙태한 사람이나 누드사진을 찍은 사람은 한국의 미를 '대표'할 자격이 안된다고 하는 거다. 사람마다 느끼는 아름다움은 다 다른데 왜 낙태를, 혼전성관계에 반대하고, 누드사진을 싫어하는 사람이 느끼는 아름다움만 한국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이 되어야 하는가.
한국의 음악을 대표하는 사람은 정명훈, 조수미, 신영옥, 장영주, 장한나 같은 사람밖에 없다고 하면 되겠나. 신승훈은? 비는? 이문세는? 김건모는? 베이비복스는? 천상지희는? 동방신기는? 이효리는?
오해할까봐 분명히 밝혀 두고 싶다. 내가 이해 못하겠다고 한 게 그저 '즐거운 이벤트'인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국한해서 논의되는 거라면 이해할 수 있다. 미스코리아 주최 측이 심사 기준에 '낙태를 안했을 것(혹은, 누군가의 낙태 종용을 인터넷에 올려 주목받은 적이 없을 것)' '누드사진을 찍은 적이 없을 것' 같은 기준을 넣는다면, 나는 '그래? 좀 웃기는 대회군' 이라고 생각하고 무시해 버릴 것이다. 그저 한 민간단체 행사 진행에 나라는 개인은 왈가왈부할 자격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다. 내가 여자였어도 출전에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능력 여부는 차치하자.)
만약 내가 미스코리아로서 갖는 명예나 이득이 탐났다면? 당연히 그런 미스코리아 선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거다. 대학가요제에서 상을 받고 싶으면 대학가요제 심사 기준에 맞춰야 하고 아메리칸아이돌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돌에 되고 싶으면 당장은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있어도 폴라, 사이먼, 랜디와 미국 대다수 시청자 입맛에 맞춰 줘야 하는 법. 그게 싫으면 무시하고 참가하지 않으면 될 테다. 전형적인 '트레이드-오프(trade-off)' 관계다. 줄리어드 음대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놈이 심사위원 앞에서 버클리 음대와 다른 심사기준 자체가 잘못됐다고 따지는건... 씨알도 안먹힐 또라이짓에 불과하단 말.
내가 '미스코리아'를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는 건 결국 딱 그래야 한다고 생각되는 정도만 권위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주최 측의 미스코리아 선발 기준에 잘 맞으신 분들이 선발됐을테니 그 기준만큼 존중하면 된다. 외모 아름답고, 지적인 분들이지만 어디까지나 그 기준에 한해서일 뿐, 어떤 그 이상의 존재로 보는 것도, 그렇게 보라고 주변에서 강요받는 것도 사양한다.(그분들이 직접 자기들을 그렇게 봐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건 잘 안다.) 계속 강조하지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는 말 그대로 주최측의 대회일 뿐이요 선발된 미스코리아도 주최측이 뽑은 그들의 미스코리아일 뿐이다.
간만에 대단치도 않은 글을 길게도 써 갈긴건 이번 미스코리아와 관련된 각종 뉴스나 관련 댓글, 게시판 글 등에서 우리 사회의 '권위과잉' 모습이 보여서다. 자기와 기준이 다른 걸 틀렸다고 비난하는 것까지 더해지면 답답해서 가슴이 멍먹해진다.
어제가 말복이라 그런지 무지하게 덥다. 집 에어컨도 고장났는데 하늘이 뻥 뚫린듯히 비나 시원하게 왔으면 한다.
Posted by 욱순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