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철이 지난 지 한참이다. 주변 선후배, 동기, 친구들 중에선 ‘어디 다녀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어디 다녀왔더니 참 좋더라‘라고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다.
개인적 사정으로 휴가를 아직 다녀오지 못한 나로서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기분은 부러움 반, 기대 반이다. ‘한참 더위에 헉헉거를 때 누군가는 시원하게 어디선가 또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구나’라는 생각이 당연히 부러움의 원천이다. 기대는 ‘남들 다 일할 때, 사람 없는 비수기에 오롯이 혼자 쉴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 뭐 생각대로 떠날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말이다.(작년에도 이러다가 결국 아무데도 못갔는데... 보아하니 올해도 한두달 내에 휴가가긴 글렀다. 새로 만들어진 팀, 그것도 세명밖에 없는 팀에 배속된 이상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다지 현실성이 없다 해도 앞으로에 대해 기대하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슬슬 ‘지쳐간다’는 느낌을 스스로 갖게 되는 지금,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사람마다 각자 이런 느낌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게 마련일텐데... 나의 경우는 개중 하나가 여행기 읽기다. 가 보지 못한 곳의 얘기도 흥겹지만 내가 잘 아는 곳에서라도 누군가 나와는 다른 것을 봤고 몰랐던 것을 느꼈다는 걸 알아가는 환상적인 느낌이 여행기엔 있다. 나같이 맨날 ‘언젠가는 다시한번 예전처럼 훌쩍 떠날거야’라고 다짐하는 사람들은 이런 맛 때문에 여행기를 읽는 게 아닐까.
8월 중순부터 15일 가량 부쩍 여행기가 땡겼다. 여행기만 서너권을 새로 사서 읽었으니 기간에 비해선 적게 읽은 편은 아닐 거다. 딱히 안풀리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풀리는 일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별히 신문 등에서 마음에 드는 신간소개를 봤을 때가 아니라면 서점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오는 걸 고르는 편이다. 일단 제목과 표지에서 드는 느낌과 짐작되는 내용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한 장 정도 읽으면서 작가나 번역자의 문체를 본다. 그것도 괜찮으면 목차와 책 앞표지의 저자 소개를 훑은 다음 삽화와 종이 질(광택나는 코팅지보다는 살짝 두꺼워도 거칠면서 올이 어느 정도 보이는, 색이 바란 느낌의 재생지 종류를 더 좋아한다.)까지 살펴서 구입을 결정한다. 내용을 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지’가 구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나 할까.
이렇게 책을 구입하다 보니 몇 번이고 읽어도 아깝지 않은 책을 고른 경우도 많지만 반 정도만 읽고 치워버리거나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한번 읽고 다시 쳐다보지 않는 실패 케이스도 꽤 있다. 최근 읽은 두권의 여행기, <내가 사랑한 뉴욕. 나를 사랑한 뉴욕.>과 <박기영 씨, 산티아고에는 왜 가셨어요?>를 굳이 구분하자면 전자는 실패라고 할 건 없지만 성공이라고 하기엔 약간 껄끄럽고 후자는, 간만에 발견한 아주 마음에 드는 여행기, 대성공 케이스다.

하지만 잡지가 대개 그렇듯이 4개 챕터 40여개의 글 스타일이 대부분 비슷하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책방을, 어떤 때는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슈퍼마켓을 몇 개 차례로 둘러본 감상을 말하지만 ‘가게 순회기’라는 면에선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게 아니던가. 많은 글이 소재는 다르지만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글은 상당히 괜찮다는 느낌이고, 어떤 글은 큰 감흥이 없다. 잡지가 그렇지 않은가. 몇 장 넘기면 괜찮은 피처가 있고, 그 다음은 그냥 휘휘 넘기면 되는 화보가 몇 장정도 있고 그러다가 또 뭔가 느낌있는 글을 발견할 수도 있는거고... 저자와 편집자가 원래부터 이런 느낌을 주고자 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글쎄.. 여행기의 전체적인 완결성 보다는 연재가 끝나지 않은 해외 통신원의 기고가 이어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구성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전체 챕터 구성이 약간 억지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해외 주재원 부인, 뉴욕으로 이주한 미국인, 재이민자 2세, 한국인 유학생, 열심히 살아가는 남미 불법체류자 등의 인터뷰로 구성된 세 번째 챕터 때문이다.
신문사에서 특정 주제에 대한 기획기사나 특집기사를 구성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터뷰 꼭지다. 그 주제에 대한 전문가라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 기획의 공신력마저 높여 줄 수 있다. 어떤 인물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주제에 대해 말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뉴스거리가 된다. 게다가 밋밋한 지면에 역동적인 포즈나 눈에 띄는 표정의 얼굴사진이 들어간다면 편집상 보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제대로 된 인터뷰어가 섭외가 되었다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구성에 대한 고민을 덜 하고도 기사를 준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거다. 다른 기사를 구성하기가 만만치 않을 때 인터뷰를 구색맞추기용으로 준비하는 일은? 물론 있다. 상당히 많다.
아니라면 할말은 없지만 이 책의 세 번째 챕터가 그런 느낌이다. 얼핏 보면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 한 것 같은데, 잘 살펴보면 대부분이 저자가 뉴욕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삼은 자원봉사센터인 ’인터내셔널 센터 뉴욕(ICNY)’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다. 과연 이 사람들의 인터뷰가 뉴욕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줄 때 필요불가결한 요소였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첫 챕터, 주인공이 뉴욕으로 무작정 건너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글이 주로 담긴 부분은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생활 사이클의 단위는 다르지만 마감에 치이는 사람끼리 느끼는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답답한 일상의 탈출구로 뉴욕을 선택하는 순간에선 나도 그러기를 바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긴 용기가 정말 부러웠다.
어쨌든 전체적인 느낌은 ’잡지같다’는 것. 구성도 (내가 보기엔) 괜찮은 글, 그저그런 글이 적당히 섞여 있고, 사진도 많아서 눈도 많이 심심치 않다. 읽을 때는 나름 나쁘지 않았는데... 두번 읽기 위해 선뜻 손이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박기영씨에 대해선 그냥 좋아하는 노래 한두곡 정도를 부른 가수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고 평소 연예인들이 좀 뜨고 나서 내놓는, 내용은 ’나 이렇다’라는 거 외 다른 게 없이 이름만으로 상당 부분을 때우려는 책에는 반감도 살짝 있는 편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안 샀을 거다. 하지만 박기영씨의 책은 내용이 부실할 거란 내 지레짐작과 편견을 확실히 배신해 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스타일과 내용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프랑스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야고보의 무덤 위에 세워진 대성당)까지의 순례길을 걸은 약 한달간의 여정을 빼곡히 기록했다. 여정이라고 해 봤자 실은 오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걸었다. 어디에선 다리가 아팠다.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났다. 어디 숙소는 영 불편했다(혹은 너무 좋았다) 정도가 다다. 특별히 아름다운 경치나 명승지가 자세히 소개돼 있는 것도 아니고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이국 음식의 향연이 글로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종류의 읽을거리만 따지면... 재미없는 책이다, 정말로. 있는 건 길을 걸으면서 겪는 심경 변화 뿐이니까.
하지만 담담하게 풀어내는 심경 변화가 너무나 담백하고 솔직하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길을 걸으며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가 처음부터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정말 ‘절실하게’ 다가온다. 왜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어둡고, 침울하고 무거운 기분에서 시작된 순례 여정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그는 무언가를 느끼고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인간, 성공, 종교 등에 대해서. ’여행 책자’가 아닌 ’여행기’에서 우리가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저자가 여행에서 만난 무언가를 통해 변화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변화를 간접적이나마 체험해 보는 것 말이다.
박기영씨의 책은 무겁다. 분위기, 말투, 소재가 다 무겁게 느껴진다. 내 기분이 그다지 밝지 않아서였을까, 최소한 나에겐 가볍게 읽기엔 적당치 않았다. 하지만 손에서 놓기는 싫었다. 최소한 이 사람의 이 무거운 여행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될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해야 할까.
박기영씨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아주 강한 종교적인 이유로 걸었다. 종교에 투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리지만 뜨거운 신자가 그 신에 귀의하겠다는 의지와 마음을 다짐하려는 목적이었을 게다. 내가 느낀 무거움의 상당 부분도 여기에 기인했을 거다. 여기에 소속사 같은 문제로 몇 년간 겪은 좌절의 어려움이 더해졌겠지.
이런 종교적인 느낌은 몇몇 사람들에겐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을거다. 박기영씨도 그걸 알고 있다.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면 있다고는 대답하지만 생활방식이나 사고가 종교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나도 그에게 ’신도’라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았다.
그렇다 해도 박기영씨의 글은 최소한 나에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순례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건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걷고 ‘연금술사’를 쓴 이후부터라고 한다. 박기영 씨의 책에도 코엘료 이야기가 한두번쯤 나온다. 난 이전부터 ’연금술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유명한 책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치졸한 반항기, 혹은 마이너적 속성 때문인지 너무 유명세를 탄 책이라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내 책장엔 ‘연금술사’가 꽂혀 있다..
<8월 중순에 쓰기 시작한 걸 잊고 있다가 이제야 끝맺었다. 김정은씨 책에 대한 글은 8월 24일쯤에, 박기영씨 책에 대한 글은 9월 28일에 썼다. 기준이 달라져서 한쪽에 편파적이 된 것 같다. 그래도 느낌의 큰 줄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믿는다.>
Posted by wookso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