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디지터리 유저, 그들은 누구인가? - 디지털 네이티브(Grown up 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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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n Up Digital, 2009. 돈 탭스콧

            <N세대의 특징>
    1. 최고의 가치는 선택의 자유다.
    2. 내 개성에 맞게 맞춤 제작한다.
    3. 철저하게 조사, 분석한다.
    4. 약속을 지키고 성실함을 중시한다.
    5. 협업에 익숙하다.
    6. 일도 놀이처럼 즐거워야 한다.
    7. 매사에 스피드를 추구한다.
    8. 혁신을 사랑한다.
    출처: 디지털 네이티브, 돈 탭스콧


 "요새 젊은 것들은 말이지..." 이렇게 시작하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젊은이의 역량과 참신함을 따라가지 못한 분에 술 마시고 푸념하는 중늙은이로 몰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어느 정도 겪어 본 사람들은 어디선가 확신에 차 불쑥 이런 말을 꺼내거나 언젠가 자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마련이다. '세대론'은 비록 지나친 일반화라는 오류를 범할 때도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통찰력을 내포하고 있다면 그 시대, 또는 특정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부활한 세대론 - 대체 넌 누구냐?
 
 1990년대의 X세대 담론 이후 어느 정도 잦아들었던 세대론이 2000년대 이후 다시 고개를 들더니 최근 절정에 달했다. 개인용 컴퓨터(PC)와 삐삐, PC 통신을 넘어 휴대폰과 인터넷의 폭발과 혁명 안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장해 온 세대가 30세 전후가 돼 사회 전면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세대론이상한 또 다른 이유는 기성세대가 보기엔 새 세대들을 이해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기성세대 입장에서 보자면 일도 열심히 안하면서 복지나 혜택 챙기는 건 기가 막히다. 그러면서도 회식이나 체육대회 같은 모임은 얘기만 들어도 표정이 굳어진다. 업무시간엔 볼때마다 블로그나 메신저, 혹은 뭐하는 것인지도 종잡을 수 없는 '트위터' 질에 여념이 없는 것 같아 넌지시 한마디 하면 그런걸 왜 보냐는 식으로 눈을 치켜뜬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 것이 아이디어를 내는 걸 보면 마음에 쏙 드는 구석은 없을지라도 참신하긴 참신하다. 가끔 취미생활에 대해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전문가 뺩치는 수준으로 해박해 혀가 돌아갈 지경이다. 이러니 어찌 "요새 젊은 것들은 어쩌구,,,' 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인터넷과 휴대폰,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미래 비즈니스 전략 전문가인 돈 탭스콧은 이들을 'N세대'라고 부른다. 그는 N세대를 수년 전 발표한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N세대의 등장> 원고에서 처음 언급했다. 이들은 1970년대 후반 이후 출생, PC 보급과 함께 유소년기를 보냈으며 청소년기엔 인터넷이나 사이버 공간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며 사회화를 경험했다. 이들을 일컫는 또 다른 말은 '디지털 네이티브'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마크 프렌스키(Marc Prensky)가 2001년 그의 논문 'Digital Native, Digital Immigrants'를 통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역시 디지털 혁명과 함께 성장한 30세 가량의 세대를 일컫는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디지털 장비와 문화에 어떤 거부감도 없을 뿐더러 이를 자유롭게 사용한다는 것. 웬만하면 디지털 기기 매뉴얼 따위는 보지 않는다. 후천적으로 디지털 기술에 적응해 간 30대 이상의 기성세대인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s)와는 정 반대다. 그래서 디지털 네이티브다.

 신속하고 즉각적인 정보처리와 반응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정보원을 접하면서 멀티태스킹(Multitasking)과 같이 빠르게 정보를 처리하는 법을 익혔다. 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인스턴트 메신저 등을 통해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때에 상대방과 의사소통을 주고 받아왔기 때문에 어떤 행위에 대한 신속하고도 즉각적인 반응을 즐긴다. 싸이월드, 트위터,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등 SNS나 블로그 등과 같은 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걸 즐긴다.
 놀이와 일이 구분되지 않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일 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열심히 놀자'가 아니라 도전적이고 재미있는 놀이같은 일에 실제 놀이보다 훨씬 더 몰입한다. 돈 탭스콧이 N세대, 혹은 디지털 네이티브의 특징을 △선택과 자유를 중시하고 △개성에 따른 맞춤형을 선호하며 △협업에 탁월하고 △철저한 조사·분석가다. △성실성을 중시하고 △일과 놀이가 하나가 되길 바라고 △속도 △혁신을 중요하게 여긴다 의 8개로 정리한 것도 같은 차원이다.

 한국 N세대의 특수성

 이런 N세대, 디지털 네이티브의 일반론에 더해 한국의 그들은 특수성을 갖는다. 우선 이들은 자신이 수호하는 가치에 생채기가 나는 것에 과도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핵가족에서 '왕자', '공주' 대접을 받으며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왔을 뿐더러 부모의 끊임없는 지도와 함께 자칫 과잉으로 치부될 수 있을 정도의 보호를 받아 왔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가치에 대해 '내 편'이 있다는 의식, 무의식이 확고할 뿐만 아니라 그 가치에 생채기가 났을 때 쉽게 부고하거나 가치를 되찾기 위한 활동에 쉽게 빠져들기도 한다. 물론 그 문대는 주로 온라인이다. '루저' 한마디에 들고 일어난 네티즌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네티즌 수사대의 응징이 개인정보 유출이라는 또 다른 인격 파괴행위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이런 이들의 성향이 긍정적인 형태로 나타난 적도 많았다. 국회서 삭감된 친일인명사전 발간 예산을 네티즌 사용자가 십시일반으로 벌충한 것이 그런 사례다.

 한국 N세대의 또 다른 특징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사안을 제외하고는 무관심하거나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많다는 것이다. 사회가 민주화 된 탓도 분명 있지만 N세대가 한창 대학 생활을 영위하는 때 이미 '투쟁'은 주 관심사가 아니다. IMF 사태나 최근의 경기침체 때 부모 세대의 경제 불황을 겪은 탓이 크고 투쟁보다 음악, 미술 등 문화예술 활동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도 일조했다. 9.11 등의 사태를 거치며 보수화의 기치 하에 국제적 안보가 강조된 탓도 있을 것이다. 한때 수백명이 운집하던 봄 대학 총궐기 현장의 모습은 1997년 이후 십수척 높이 거대한 깃발 아래 많아야 간신히 수십명이 옹기종기 모이는 것으로 바뀐 것도 이때쯤이다. 투쟁이 사라진 자리는 상당 부분 '돈(경제가 아니다)'과 '직장'이 자리잡았다. 대학 입학 순간부터 고시, 혹은 공기업 취업 준비를 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최고 인기 동아리로 재테크 동아리가 자리매김한 것이다.

 이런 특성은 대부분 오프라인 활동과 관련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온라인 활동과도 깊이 연계된다. 안정을 추구하려는 한국 N세대의 특징은 혁신을 추구하는 일반적인 N세대의 특징과 교차점을 형성한다. 온라인에서 N세대는 혁신, 진보적 가치를 부르짖고 세상을 뒤엎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의외로 힘이 약하다. 지난 대선 온라인 여론만을 놓고 보면 현 대통령의 당선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결국 N세대의 온라인 여론은 오프라인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

  디지터리 유저라고 불러보면 어떨까?

 이렇게 한국의 그들은 일반적인 N세대와 구분되기 때문이 이들을 그대로 N세대로 부르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이들은 디지털 네이티브의 능력은 갖췄으면서도 추구하는 가치에 있어서는 혁신과 안정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러는 와중에 쉽게 분노하고 흥분하기도 한다.
 조잡하게나마 이런 이미지를 머릿속에 독자적으로 구축해 본다면 이들은 '아직까지는' 도서관 이용자(Library User)와 비견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들에겐 '디지털' 또는 '네트워크'라는 도서관에서 생활하고 일하고, 사는 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다. 때문에 디지털 문화, 네트워크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고 그 가치와 경험을 머릿속에 깊이 저장하는 게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하지만 이런 경험과 지식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도서관 바깥, 빡빡하디 빡빡한 현시렝서 실천하는 건 이들에겐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의 그들을 돈 탭스콧이 말한 N세대와는 또 다른, '디지터리 유저(Digital Library User)'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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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의 성장기, 그리고 스타벅스에 대한 찬미 - <땡큐! 스타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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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언제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위정(爲政)’편에서 자신의 삶과 학문의 성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서른 살에 몸을 세워(而立), 마흔 살엔 미혹됨이 없었다(不惑).  쉰 살때엔 천명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해져서(耳順) 남의 말을 받아들였다. 일흔 살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음에도(從心) 법도를 넘은 적이 없었다.”
 
 이 말은 보통 ‘저 나이때쯤엔 이럴 정도로 성숙해야 하니 그럴 수 있도록 항상 정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에는 ’생이 마감하는 순간까지 배움을 통해 변화하는 게 인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땡큐! 스타벅스>의 저자인 ’마이크’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성숙, 깨우침이란 면에선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공자의 제자다.
 
 64세 생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마이크는 거의 파산 상태다. 백인 상류 사회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굴지의 광고회사인 JWT에서 25년을 보내며 이사까지 올랐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퇴물 취급을 받고 한 순간에 잘리게 된다. 컨설팅 회사를 차렸지만 결국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늦바람까지 피워 그나이에 늦둥이 아들을 얻었지만 부인에게선 버림받고 집에서도 쫓겨났다. 그에게 남은 호사라고는 맨하탄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라떼 한잔을 시키는 것 뿐이다. 그때 20대 후반의 한 흑인 여성(크리스타)이 묻는다. "혹시, 여기서 일할 생각 없으세요?"

 마이크는 막다른 곳에서 크리스타가 제안한 기회를 잡는다. 매장 관리나 마케팅이 아닌, 버티기에 쉽지 않은, 바닥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주문 처리와 돈 계산을 하고,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육체 노동자 ’바리스타’로의 새 생활이다. 화이트칼라의 삶에 익숙한 사람은 이정도만 돼도 ’막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아니면 없다는 생각에 마이크는 헌신적이다.
  
 그러나 마이크의 인생은 오히려 이전과는 다른 의미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직원(파트너)들끼리 ’존중’하는 스타벅스에서 그는 자신이 수십년간 얼마나 딱딱한 삶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얼마만큼의 편견이나 아집 속에 갇혀 있었는지, 사람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서 살았는지를 서서히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파트너와 가게 일을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겨울 밤, 그는 불현듯 깨닫는다. "내 생에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어."
 
 주인공이 어린이나 청소년이 아니라 64세의 노인이라는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이 책은 전형적인 성장기다. 대부분 성장기에서 젊은 주인공은 백지와도 같은 상태에서 지혜나 현실에 눈을 떠 가지만 <땡큐! 스타벅스>에서 주인공은 빽빽하게 채워졌던 자신의 노트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이를 새로 써 간다. 자기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그게 왜 잘못됐는지를 솔직하게 말하고 그게 어떻게 변했는지를 담담하게 말하는 주인공과 동화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은 스타벅스에 대한 찬미가이기도 하다. 지시가 없이 모든 일이 파트너 사이의 부탁으로 시작되는 일 처리 방식, 직원들을 존중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려는 의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최고의 경험(the best experience)을 제공하려는 스타벅스의 의지에 감화받았다는 걸 저자는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How Starbuks Saved My Life>라는 원제는 단순한 제목 이상의 의미다.

 <땡큐! 스타벅스>는 분명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덜 들은 게 있는 것 같다. 뭘 숨겼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이크가 본 게 스타벅스의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벅스와 스타벅스 파트너들에겐 정말 칭찬거리밖에 없었을까? 마이크가 60년 인생을 통해 연마한 나름의 통찰력, 의식으로 평가했을때 스타벅스는 과연 그렇게 완벽하기만 한 존재였을까?
 
 마이크가 칭찬 일색 중에서도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꼬투리라도 하나 잡았으면 차라리 안심했을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의 세상살이를 통해 ’아름답기만 한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지 않나.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아마 마이크를 한번 붙잡고 정말 그것밖에 없었냐고 한번 물어보고 싶은 기분이 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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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검투사 2009/02/25 15:50

    "망명자의 눈으로 본 세상"이랄까요...
    길 아저씨가 자신이 25년 동안 몸담고도 하루아침에 명퇴로 보답받은 회사인 JWT에 대해서는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마치 탈북한 혹은 (냉전 시절에) 소련이나 동유럽,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미국으로 망명해온 사람이 <월간조선>이나 <리더스다이제스트> 같은 데 쓴 글을 보는 느낌이 작업하는 내내 들더군요.
    기실 저 또한 스타벅스에 대한 지나친 찬미는 독자들에게 안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도 있다는 점 때문에 어떻게든 그가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을 찾아보려 했습니다만... 결국 저런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 -ㅅ-;

    perm. |  mod/del. |  reply.
    • 욱순이 2009/05/14 08:22

      아.. 이렇게 편집자께서 직접 글을 남겨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반갑습니다.^^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망명자의 눈으로 본 세상" ㅎㅎ
      길 아저씨는 JWT에 대한 서운함 섭섭함이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 대척점(으로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스타벅스에 그렇게 애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지금 길 아저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궁금합니다. 지금도 스타벅스에 대해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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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권의 여행기, 그리고  <나를 사랑한 뉴욕...>, <박기영 씨, 산티아고에는...>


 
휴가철이 지난 지 한참이다. 주변 선후배, 동기, 친구들 중에선 ‘어디 다녀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어디 다녀왔더니 참 좋더라‘라고 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아졌다.
 개인적 사정으로 휴가를 아직 다녀오지 못한 나로서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드는 기분은 부러움 반, 기대 반이다. ‘한참 더위에 헉헉거를 때 누군가는 시원하게 어디선가 또 즐거운 시간을 보냈겠구나’라는 생각이 당연히 부러움의 원천이다. 기대는 ‘남들 다 일할 때, 사람 없는 비수기에 오롯이 혼자 쉴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 뭐 생각대로 떠날 수 있을 것인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말이다.(작년에도 이러다가 결국 아무데도 못갔는데... 보아하니 올해도 한두달 내에 휴가가긴 글렀다. 새로 만들어진 팀, 그것도 세명밖에 없는 팀에 배속된 이상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다지 현실성이 없다 해도 앞으로에 대해 기대하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슬슬 ‘지쳐간다’는 느낌을 스스로 갖게 되는 지금, 이것만으론 뭔가 부족하다. 사람마다 각자 이런 느낌을 해소하는 방법이 있게 마련일텐데... 나의 경우는 개중 하나가 여행기 읽기다. 가 보지 못한 곳의 얘기도 흥겹지만 내가 잘 아는 곳에서라도 누군가 나와는 다른 것을 봤고 몰랐던 것을 느꼈다는 걸 알아가는 환상적인 느낌이 여행기엔 있다. 나같이 맨날 ‘언젠가는 다시한번 예전처럼 훌쩍 떠날거야’라고 다짐하는 사람들은 이런 맛 때문에 여행기를 읽는 게 아닐까.
 
 8월 중순부터 15일 가량 부쩍 여행기가 땡겼다. 여행기만 서너권을 새로 사서 읽었으니 기간에 비해선 적게 읽은 편은 아닐 거다. 딱히 안풀리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풀리는 일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해서 그랬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사는 경우가 거의 없다. 특별히 신문 등에서 마음에 드는 신간소개를 봤을 때가 아니라면 서점을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다 눈에 들어오는 걸 고르는 편이다. 일단 제목과 표지에서 드는 느낌과 짐작되는 내용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한 장 정도 읽으면서 작가나 번역자의 문체를 본다. 그것도 괜찮으면 목차와 책 앞표지의 저자 소개를 훑은 다음 삽화와 종이 질(광택나는 코팅지보다는 살짝 두꺼워도 거칠면서 올이 어느 정도 보이는, 색이 바란 느낌의 재생지 종류를 더 좋아한다.)까지 살펴서 구입을 결정한다. 내용을 보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지’가 구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나 할까.
 
 이렇게 책을 구입하다 보니 몇 번이고 읽어도 아깝지 않은 책을 고른 경우도 많지만 반 정도만 읽고 치워버리거나 돈이 아까워서 억지로 한번 읽고 다시 쳐다보지 않는 실패 케이스도 꽤 있다. 최근 읽은 두권의 여행기, <내가 사랑한 뉴욕. 나를 사랑한 뉴욕.>과 <박기영 씨, 산티아고에는 왜 가셨어요?>를 굳이 구분하자면 전자는 실패라고 할 건 없지만 성공이라고 하기엔 약간 껄끄럽고 후자는, 간만에 발견한 아주 마음에 드는 여행기, 대성공 케이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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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씨가 쓴 <내가 사랑한 뉴욕. 나를 사랑한 뉴욕>은 한 마디로 ‘잡지스럽다’. 잡지기자답게 관광 가이드와는 다르게 다양한 뉴욕의 모습을 담아내려는 나름대로의 시도가 보인다.
 하지만 잡지가 대개 그렇듯이 4개 챕터 40여개의 글 스타일이 대부분 비슷하다. 어떤 때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책방을, 어떤 때는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슈퍼마켓을 몇 개 차례로 둘러본 감상을 말하지만 ‘가게 순회기’라는 면에선 본질적으로는 비슷한 게 아니던가. 많은 글이 소재는 다르지만 비슷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글은 상당히 괜찮다는 느낌이고, 어떤 글은 큰 감흥이 없다. 잡지가 그렇지 않은가. 몇 장 넘기면 괜찮은 피처가 있고, 그 다음은 그냥 휘휘 넘기면 되는 화보가 몇 장정도 있고 그러다가 또 뭔가 느낌있는 글을 발견할 수도 있는거고... 저자와 편집자가 원래부터 이런 느낌을 주고자 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글쎄.. 여행기의 전체적인 완결성 보다는 연재가 끝나지 않은 해외 통신원의 기고가 이어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구성에 대해 한 가지만 더 말하자면 전체 챕터 구성이 약간 억지스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해외 주재원 부인, 뉴욕으로 이주한 미국인, 재이민자 2세, 한국인 유학생, 열심히 살아가는 남미 불법체류자 등의 인터뷰로 구성된 세 번째 챕터 때문이다.
 신문사에서 특정 주제에 대한 기획기사나 특집기사를 구성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터뷰 꼭지다. 그 주제에 대한 전문가라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 주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 기획의 공신력마저 높여 줄 수 있다. 어떤 인물은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주제에 대해 말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뉴스거리가 된다. 게다가 밋밋한 지면에 역동적인 포즈나 눈에 띄는 표정의 얼굴사진이 들어간다면 편집상 보기에도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제대로 된 인터뷰어가 섭외가 되었다면 (제대로 된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상대적으로 구성에 대한 고민을 덜 하고도 기사를 준비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거다. 다른 기사를 구성하기가 만만치 않을 때 인터뷰를 구색맞추기용으로 준비하는 일은? 물론 있다. 상당히 많다.
 아니라면 할말은 없지만 이 책의 세 번째 챕터가 그런 느낌이다. 얼핏 보면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 한 것 같은데, 잘 살펴보면 대부분이 저자가 뉴욕 네트워크의 중심지로 삼은 자원봉사센터인 ’인터내셔널 센터 뉴욕(ICNY)’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다. 과연 이 사람들의 인터뷰가 뉴욕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줄 때 필요불가결한 요소였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첫 챕터, 주인공이 뉴욕으로 무작정 건너가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의 글이 주로 담긴 부분은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생활 사이클의 단위는 다르지만 마감에 치이는 사람끼리 느끼는 동질감이라고나 할까?
 답답한 일상의 탈출구로 뉴욕을 선택하는 순간에선 나도 그러기를 바란 적이 한두번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 '생각'을 실행에 옮긴 용기가 정말 부러웠다.
 어쨌든 전체적인 느낌은 ’잡지같다’는 것. 구성도 (내가 보기엔) 괜찮은 글, 그저그런 글이 적당히 섞여 있고, 사진도 많아서 눈도 많이 심심치 않다. 읽을 때는 나름 나쁘지 않았는데... 두번 읽기 위해 선뜻 손이 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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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박기영 씨가 쓴 <박기영 씨 산티아고에는 왜 가셨어요?>는 솔직히 말하면 투박하고 거친 느낌의 재생지 스타일 종이와 노란 색 표지가 맘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구입했다. 내용에 대한 기대치는 상당히 낮았던 편.
 박기영씨에 대해선 그냥 좋아하는 노래 한두곡 정도를 부른 가수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고 평소 연예인들이 좀 뜨고 나서 내놓는, 내용은 ’나 이렇다’라는 거 외 다른 게 없이 이름만으로 상당 부분을 때우려는 책에는 반감도 살짝 있는 편이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안 샀을 거다. 하지만 박기영씨의 책은 내용이 부실할 거란 내 지레짐작과 편견을 확실히 배신해 줬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스타일과 내용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프랑스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대성당(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야고보의 무덤 위에 세워진 대성당)까지의 순례길을 걸은 약 한달간의 여정을 빼곡히 기록했다. 여정이라고 해 봤자 실은 오늘은 어디부터 어디까지 걸었다. 어디에선 다리가 아팠다. 가는 길에 누구를 만났다. 어디 숙소는 영 불편했다(혹은 너무 좋았다) 정도가 다다. 특별히 아름다운 경치나 명승지가 자세히 소개돼 있는 것도 아니고 식욕을 불러일으키는 이국 음식의 향연이 글로 펼쳐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 종류의 읽을거리만 따지면... 재미없는 책이다, 정말로. 있는 건 길을 걸으면서 겪는 심경 변화 뿐이니까.
 하지만 담담하게 풀어내는 심경 변화가 너무나 담백하고 솔직하다.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이 길을 걸으며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것인지가 처음부터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정말 ‘절실하게’ 다가온다. 왜인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어둡고, 침울하고 무거운 기분에서 시작된 순례 여정이 하루하루 지나갈수록 그는 무언가를 느끼고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인간, 성공, 종교 등에 대해서. ’여행 책자’가 아닌 ’여행기’에서 우리가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저자가 여행에서 만난 무언가를 통해 변화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런 변화를 간접적이나마 체험해 보는 것 말이다.
 박기영씨의 책은 무겁다. 분위기, 말투, 소재가 다 무겁게 느껴진다. 내 기분이 그다지 밝지 않아서였을까, 최소한 나에겐 가볍게 읽기엔 적당치 않았다. 하지만 손에서 놓기는 싫었다. 최소한 이 사람의 이 무거운 여행의 끝이 어떻게 마무리될까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고 해야 할까.
 박기영씨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아주 강한 종교적인 이유로 걸었다. 종교에 투신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리지만 뜨거운 신자가 그 신에 귀의하겠다는 의지와 마음을 다짐하려는 목적이었을 게다. 내가 느낀 무거움의 상당 부분도 여기에 기인했을 거다. 여기에 소속사 같은 문제로 몇 년간 겪은 좌절의 어려움이 더해졌겠지.
 이런 종교적인 느낌은 몇몇 사람들에겐 거부감을 일으킬 수도 있을거다. 박기영씨도 그걸 알고 있다. 종교가 있냐고 물어보면 있다고는 대답하지만 생활방식이나 사고가 종교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나도 그에게 ’신도’라는 느낌을 가질 때가 많았다.
 그렇다 해도 박기영씨의 글은 최소한 나에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어느 정도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가 순례자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된 건 파울로 코엘료가 이 길을 걷고 ‘연금술사’를 쓴 이후부터라고 한다. 박기영 씨의 책에도 코엘료 이야기가 한두번쯤 나온다. 난 이전부터 ’연금술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유명한 책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치졸한 반항기, 혹은 마이너적 속성 때문인지 너무 유명세를 탄 책이라 아예 관심을 가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내 책장엔 ‘연금술사’가 꽂혀 있다..

<8월 중순에 쓰기 시작한 걸 잊고 있다가 이제야 끝맺었다. 김정은씨 책에 대한 글은 8월 24일쯤에, 박기영씨 책에 대한 글은 9월 28일에 썼다. 기준이 달라져서 한쪽에 편파적이 된 것 같다. 그래도 느낌의 큰 줄기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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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꼬날 2008/09/29 19:33

    다음 리뷰도 기대하겠습니다 최기자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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