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2009/06/05 14:48
미래-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6월 4일자 전자신문 미래섹션 섹션톱으로 게재된 '이머징 이슈-상상공학' 기사를 블로그에 맞게 수정한 글입니다.)

상상(想像):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어린 시절, 사전적인 뜻은 몰랐을지라도 누구나 본능적으로 체화했던 게 상상이다. 책을 읽고, 만화를 보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실재하지 않는 그 안의 존재가 그대로 또는 변형된 형태로 바로 내 옆에 나타나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상상력은 오래 가지 못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희망은 나이가 들면서, 대학에 가고 직장에 다니면서 퇴색하고 만다.
 하지만 상상은 이상적 미래, 인간이 갈 길을 보여 주기에 이렇게 포기할 수 없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선 상상속 이야기를 실제로 구현하려는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건담', 도쿄 강림

 2009년 7월을 전 세계의 건담 마니아들은 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도쿄 오다이바에 리얼 사이즈 '건담'이 등장하기 때문. 일본의 반다이남코홀딩스는 79년 방영된 인기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3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높이 18m에 달하는 건담(RX-78-2, 퍼스트건담)을 제작중이다. 머리 부분과 양 어깨 등 전신에 약 50개의 라이트를 내장하고 가슴 부분과 발목 부분에 연기를 분사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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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담은 토미노 요시유키 감독에 의해 탄생한, 전 세계를 대표하는 로봇 캐릭터 중 하나다. 마징가Z와 같은 기존 로봇 애니메이션이 초과학적인 설정(슈퍼로봇)으로 일관했다면 건담은 국가집단, 군대 간 전쟁, 군수품으로서의 로봇(모빌슈트) 등과 같은 현실적인 설정과 영상으로 '리얼로봇'이라는 장르를 열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등장한 로봇, 설정, 인간 등에 대한 마니아들의 애정과 토론이 끊일 줄 모른다.
 
 건담을 애니메이션 초기 설정 그대로 재현하는 건 단순한 기념상 제작의 의미를 넘어선다. 전쟁의 비극성이 애니메이션의 주제지만 건담 그 자체는 로봇 엔지니어(메카닉)가 도달해야 할 이상적 지향점이다. 비록 내부 장치까지 구현하는 건 아니지만 실제 건담을 보면서 엔지니어들은 이상에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될 것이다.
 사실 로봇 애니메이션, 만화가 어떤 나라보다도 풍부한 일본의 로봇업계엔 그림 속의 로봇을 실물로 구현하려는 시도가 끊이질 않았다. 전 세계가 경제성이 낮고 구현이 어렵다고 평가할 때에도 일본이 2족보행 로봇의 개발에 집중했던 배경에는 '아톰' '철인28호'를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일본 엔지니어들의 꿈이 녹아 있다. 일본의 꿈은 결국 2000년 세계 최초의 2족보행로봇인 혼다의 '아시모'로 구현됐다. 상상의 일부가 현실이 된 것이다.

3년 3개월, 500억원이면 은하철도도 충분하다

 상상의 구체화는 로봇 분야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의 대형 토목건설 전문기업인 마에다건설은 도쿄만 아쿠아라인 등 대공사 레퍼런스로 유명했지만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선 이 회사의 '판타지영업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이 부서는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각종 건축물을 이 순간 마에다건설의 건출, 토목기술로 건설키 위한 기본 설계를 담당한다. 건설업 홍보를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대표 키워드로 부상했다.
 판타지영업부의 견적에 따르면 마징가Z의 오수처리장형 지하 격납고는 시도때도 없는 기계수의 방해만 없다면 72억엔에 6년5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다. 2003년 견적이니 지금 기술이라면 공기와 비용이 줄어들 게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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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999 우주레일 발차대 설계>


 은하철도999를 하늘로 이끄는 우주레일 발차대 견적은 이보다 더 현실적이다. 37억엔(500억원)을 들이면 3년 3개월에 만들 수 있다. 이들은 "견적서를 보고 '정말로' 은하철도999 발차대를 발주해 주신다면 조건에 걸맞은 계획으로 수정해 실제로 시공하겠다"라고 말한다.

SF를 현실로

 상상을 현실로 만들려는 시도는 최근에만 집중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간 과학기술의 발전은 상상, 특히 SF(사이언스 픽션)의 탐구를 통해 이뤄진 게 많다. 쥘 베른과 그의 소설이 대표적이 낫례다. 그가 해저2만리에서 그린 '외부 동력공급 없이 장기간 공기를 만들어가며 물 속을 다니는 안전한 탈것'인 노틸러스호는 원자력 잠수함의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어디 이뿐인가. 휴대폰, 우주선 등 그의 상상을 그대로 빼다받은 현재의 기술은 일일히 꼽기도 힘들다. '과학기술은 쥘 베른의 생각을 따라 발전했다'는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나라, 기술 있지만 문화는 아직 척박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차원의 프로젝트 진행 사례들이 있다.
 로봇과 관련해서라면 2012년 개장을 목표로 추진중인 인천 로봇랜드의 '태권V타워'가 있다. 청라지구에 76만7286㎡  규모로 들어설 로봇 놀이시설, 로봇경기장, 로봇체험관 등을 로봇 복합 테마파크에 태권V 형태의 탑을 만들어 인천과 로봇랜드의 상징으로 만들겠다는 게 인천 로봇랜드 추진기획단의 생각이다.
 111m 높이에 태권V 전시장과 우주전망대, 하늘전망대 등을 설치할 계획으로 최초 기획 단계에선 상체 부분에 구동부분을 넣어 태권V가 간단한 포즈 변화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검토했다. 가령 일본과 독도문제가 불거지면 동쪽을 향해 품세 자세를 취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 부분은 사전 엔지니어링 검토 단계에만 수억원이 들어가는 점 때문에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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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태권V타워는 복잡한 기계가 아니라 뉴욕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약간은 단순한 형태가 될 것이다. 아쉽긴 하지만 어쨌든 이 계획은 한국 최초의 본격적인 로봇 콘텐츠읜 태권V를 최대한 실물 크기와 가깜게 재현해 보는 프로젝트가 될 전망이다.
 상상 속의 문화재를 현실로 그대로 끄집어 낸 한국 기술도 있다. 현재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는 실물로 볼 수가 없다. 많은 관광객으로 인한 훼손 때문에 2000년대 초 스페인 정부가 관광객의 직접적인 동굴 내부 견학을 금지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동굴 앞에서 실물과 똑같은 벽화를 감상하는 게 가능하다. 한국 벤처기업 아이너스가 개발한 3차원 스캐닝SW로 동굴이 폐쇄되기 직전의 스캐닝 데이터로 실물과 같은 입체형상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이후에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유적의 디지털 복원에도 참가했다. 현재 8년째 작업 중인 앙코르와트 사원 복원은 3차원 깨지거나 조각난 유적의 3D 스캐닝 데이터를 CAD 프로그램으로 연결해 앙코르와트의 원래 모습을 재현해낸다. 상상으로만 원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었던, 작게 부서져 쓰러진 불상의 머리와 팔, 다리 등 유적의 실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구현한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직 우리나라에선 상상을 현실화하려는 문화, 시도가 활발하다고는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주)로보트태권브이에서 태권V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을 기획했던 장순성 네젠테크 사장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한때 명맥이 끊기다시피해 지금도 척박한 SF 문화도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확실히 이전보다는 나아지고 있지만 상상 구체화 프로젝트 기획에 대해 아직도 '뭘 그런 걸 다 하냐' '그런게 가능하냐'라는 식으로 처음부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21세기는 상상력의 시대다. 창의성과 아이디어가 직접적인 생산수단이 되는 것이다. 상상력이 기술과 결합했을 때 앞서 말한 건담의 사례처럼 기술은 문화가 돼 다른 현실이 될 더 큰 꿈과 상상을 불러오게 된다. 정서를 넘어서 엄청난 산업적 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
 꿈과 상상력, 그리고 기술 사이의 접점을 만드는 데 우리의 미래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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