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志學), 서른 살에 몸을 세워(而立), 마흔 살엔 미혹됨이 없었다(不惑). 쉰 살때엔 천명을 알았으며(知天命), 예순 살에 귀가 순해져서(耳順) 남의 말을 받아들였다. 일흔 살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음에도(從心) 법도를 넘은 적이 없었다.”
이 말은 보통 ‘저 나이때쯤엔 이럴 정도로 성숙해야 하니 그럴 수 있도록 항상 정진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이런 가르침에는 ’생이 마감하는 순간까지 배움을 통해 변화하는 게 인간’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을 것이다. <땡큐! 스타벅스>의 저자인 ’마이크’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는 성숙, 깨우침이란 면에선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공자의 제자다.
64세 생일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마이크는 거의 파산 상태다. 백인 상류 사회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교를 졸업하고 세계 굴지의 광고회사인 JWT에서 25년을 보내며 이사까지 올랐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 퇴물 취급을 받고 한 순간에 잘리게 된다. 컨설팅 회사를 차렸지만 결국 그마저도 잘 되지 않았다. 늦바람까지 피워 그나이에 늦둥이 아들을 얻었지만 부인에게선 버림받고 집에서도 쫓겨났다. 그에게 남은 호사라고는 맨하탄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가 라떼 한잔을 시키는 것 뿐이다. 그때 20대 후반의 한 흑인 여성(크리스타)이 묻는다. "혹시, 여기서 일할 생각 없으세요?"
마이크는 막다른 곳에서 크리스타가 제안한 기회를 잡는다. 매장 관리나 마케팅이 아닌, 버티기에 쉽지 않은, 바닥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주문 처리와 돈 계산을 하고, 에스프레소를 뽑아내는 육체 노동자 ’바리스타’로의 새 생활이다. 화이트칼라의 삶에 익숙한 사람은 이정도만 돼도 ’막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아니면 없다는 생각에 마이크는 헌신적이다.
그러나 마이크의 인생은 오히려 이전과는 다른 의미의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다. 직원(파트너)들끼리 ’존중’하는 스타벅스에서 그는 자신이 수십년간 얼마나 딱딱한 삶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얼마만큼의 편견이나 아집 속에 갇혀 있었는지, 사람들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서 살았는지를 서서히 알게 된다. 그리고 다른 파트너와 가게 일을 마감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겨울 밤, 그는 불현듯 깨닫는다. "내 생에 이렇게 행복했던 적은 없었어."
주인공이 어린이나 청소년이 아니라 64세의 노인이라는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이 책은 전형적인 성장기다. 대부분 성장기에서 젊은 주인공은 백지와도 같은 상태에서 지혜나 현실에 눈을 떠 가지만 <땡큐! 스타벅스>에서 주인공은 빽빽하게 채워졌던 자신의 노트가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이를 새로 써 간다. 자기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그게 왜 잘못됐는지를 솔직하게 말하고 그게 어떻게 변했는지를 담담하게 말하는 주인공과 동화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리고 이 책은 스타벅스에 대한 찬미가이기도 하다. 지시가 없이 모든 일이 파트너 사이의 부탁으로 시작되는 일 처리 방식, 직원들을 존중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하려는 의지, 단순히 커피를 파는 게 아니라 최고의 경험(the best experience)을 제공하려는 스타벅스의 의지에 감화받았다는 걸 저자는 결코 숨기려 하지 않는다. <How Starbuks Saved My Life>라는 원제는 단순한 제목 이상의 의미다.
<땡큐! 스타벅스>는 분명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덜 들은 게 있는 것 같다. 뭘 숨겼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이크가 본 게 스타벅스의 전부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스타벅스와 스타벅스 파트너들에겐 정말 칭찬거리밖에 없었을까? 마이크가 60년 인생을 통해 연마한 나름의 통찰력, 의식으로 평가했을때 스타벅스는 과연 그렇게 완벽하기만 한 존재였을까?
마이크가 칭찬 일색 중에서도 뭔가 이해하기 어려운 꼬투리라도 하나 잡았으면 차라리 안심했을 것 같다. 우리는 이미 어느 정도의 세상살이를 통해 ’아름답기만 한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지 않나. (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아마 마이크를 한번 붙잡고 정말 그것밖에 없었냐고 한번 물어보고 싶은 기분이 들게 될 것 같다.
Posted by wooksoon



